본문 잠언 24:1-34 악인의 형통1(1-10절) 악한 사람들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들의 삶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파괴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가는 길은 결국은 멸망의 길입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쌓은 것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이 땅에서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무너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필귀정(事必歸正)’입니다. (3-4)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집’은 ‘건물’을 뜻하기도 하고, ‘가정’, ‘가문’, 더
나아가 ‘국가’를 뜻하는 말로 쓰입니다. 그리고 ‘지혜’와 ‘명철’, ‘지식’은 모두 비슷한 의미로 ‘말씀’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5-6)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 힘이 센 사람보다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 강하고, 기운이 센 사람보다는 지식이 있는 사람이 더 강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쟁을 하려면 전략을 세워야 하고, 참모가 많아야 승리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10)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우리의 인생에 환난이라는 손님이 찾아오면, 우리의 실상, 한 없이 약한 우리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난이 오기 전에 늘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버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사람에게 환난은 자신을 새롭게 하고 거듭나게 하는 출발이 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환난은 무너짐의 출발이 될 수 있습니다. 악인의 형통2(11-22절)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와 ‘살륙을 당하게 된 자’는 모두 ‘복수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죽을 죄를 지어서 끌러가는 사람이 아니라 무고함에도 유죄판결을 받았거나, 억울하게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건져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자 유대인들이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라도 구덩이에 빠진 양을 건지는 것이 당연하듯, 안식일일지라도 사람을 살리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혹 외면하는 일이 있다면, 행위대로 갚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상선벌악’, 선을 행하면 상을 주고, 악을 행하면 벌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3-14)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지혜와 명철인 하나님의 말씀을 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송이꿀’은 ‘최고 품질의 꿀’을 의미하기도 하고, ‘벌집에서 흐르는 꿀’을 뜻하기도 합니다. (21-22)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와 더불어 사귀지 말라 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니 그 둘의 멸망을 누가 알랴 하나님과 왕을 나란히 세우며, 경외해야 함을 말씀하는 것은 그 왕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합당한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눈에 보이는 왕을 바르게 섬기는 사람은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도 바르게 섬기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 줍니다. 지혜 있는 사람의 잠언(23-34절) (23)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공정한 재판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만약 악한 사람(죄인)을 옳다고 하면 백성들로부터 저주와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즉 재판을 할 때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도 안 되고, ‘안면무죄 생면유죄’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법은 법이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을 지켜주기 위해서 존재해야 합니다. (26)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적당하다’의 원 의미는 ‘모자라지도 않고, 남지도 않는 알맞다’인데, 지금은 ‘대충하다’로 더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본문의 ‘적당’은 ‘올바름’, ‘공정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입맞춤’은 친밀함의 표현입니다. 서양에서는 친밀함의 표현으로 볼을 맞추는데, 그것과 유사합니다. 표준새번역성경과 공동번역성경은 26절을 ‘바른 말을 해 주는 것이 참된 우정이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의 언어에 진실함과 올바름을 담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나태하지 말 것을 강조하며 끝이 나는데, 30-34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화장실을 보면 그 집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화장실’이 감추어진 곳, 드러나지 않는 곳을 정리를 하면 드러나는 곳은 당연하게 정리를 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다른 곳은 정리가 되었음에도 화장실이 정리가 되지 않은 집도 있습니다. 악한 사람이 형통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그들보다 더 형통하게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지혜와 명철, 지식으로 집을 짓고, 꿀과 같은 말씀을 먹어야 하는 것도 그것을 공급하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게으르고 지혜 없는 사람의 모습이 우리에게 깨달음을 준다면,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지혜와 명철의 말씀을 통해서는 얼마나 깊은 깨달음이 있겠습니까? 기 도 무엇보다도 꿀과 송이꿀과 같은 지혜의 말씀을 날마다 먹어, 그 맛의 깊이를 평생 더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삶도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신실하게 이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매일의 생활 가운데 우리의 언어가 바르고, 지혜롭고, 따뜻하여 사람들을 세워주고 살리게 하시고, 언제나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며, 주어진 삶에 신실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작성 : 정한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