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과 호랑이 마늘 - gomgwa holang-i maneul

한국 문화에 나타난 동물의 시초는 잘 알려진 것처럼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다. 이 기록을 보면 곰이 우리의 조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실제 한국을 상징하는 동물은 호랑이다. 왜 이런 차이가 빚어진 것일까. 두 동물간에 어떤 투쟁의 역사라도 있었단 말인가.

단군신화는 흥미롭게도 단군보다 환웅과 곰과 호랑이가 주인공이다. 환웅이 태백산의 신단수로 내려와 신시를 열었는데,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를 원해 쑥과 마늘을 주면서 백일동안 햇볕을 보지 말라고 하였다.

그런데 호랑이는 굴속에서 참지 못하고 뛰쳐나오고, 곰은 삼칠일을 버티고 여자가 되었다. 환웅이 잠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해서 단군을 낳았다. 단군은 1천5백년 동안 다스리다가 아사달에서 산신이 되었다.

단군과 관련한 내용은 축약되어 있고 곰과 호랑이가 강조된다. 동물이 중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신화시대에서는 너무나 일반적인 현상이다.

즉 동물을 통해 탄생한 인물이 비범하거나 신성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곰과 호랑이일까. 이들 동물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사고체계를 엿보면 새로운 문화적 현상, 즉 곰과 호랑이의 문화가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먼저 환웅은 시베리아 쪽에서 한반도로 내려오던 새 이주종족임이 분명하다. 이들이 한반도 근처로 오면서 곰과 호랑이를 신으로 숭배한 토착종족을 만나게 된다. 바로 곰과 호랑이가 종족의 상징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청동기시대에는 곰과 호랑이가 신성하게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정리하자면 새 종족인 환웅이 이 지역의 패권을 잡기 위해 곰을 숭배하는 토착종족과 결탁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근거로 당시 우리 민족은 곰을 숭배하는 종족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삼국시대 이전에 현재의 함경도와 강원도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동예(東濊)라는 나라에서는 호랑이를 신으로 모셔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신앙의 흔적은 지금도 많은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좋은 예가 치악산 산신인데, 호랑이로 표현되는 여신(女神)이다.

하지만 한반도 내에서는 곰을 신으로 모신 지역을 거의 찾기가 어렵다. 오히려 시베리아와 북만주, 일본 홋카이도 등에 곰을 신으로 모시는 제의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족의 생활근거지는 한반도보다 더 북쪽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동물의 신앙을 토대로 단군신화를 재해석할 경우 한반도는 오랜 옛날부터 호랑이를 신으로 모셔왔던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단군신화를 근거로 하면 곰과 호랑이 모두 생산능력을 갖고 있는 여성이다. 하지만 현재 전승되는 이야기에서 곰은 신성함이 상실되어 있다. '곰나루전설'이 좋은 예인데, 사람으로 둔갑한 것이 아니라 야생의 곰 그대로 남성과 부부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이야기된다.

반대로 호랑이는 효자가 효를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의 사자(使者), 또는 사람과 호랑이처녀의 슬픈 사랑을 말하고 있는 삼국유사의 '김현감호(金現感虎) 이야기'처럼 둔갑한 여성으로 나타난다. 호랑이는 부적에 등장하거나 그 뼈로 귀신을 퇴치할 수 있다는 믿음의 대상이기도 하다.

어쨌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우리 민족에게는 곰보다 호랑이가 더 신성한 존재였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환웅과 곰족 처녀 사이에 난 자손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한반도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한 것이 아니라, 호랑이를 신앙으로 하는 토착문화에 동화됐다. 단군신화와 반대로 호랑이가 곰의 도전을 물리치고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동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김종대.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장>

단군신화에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환웅을 찾아온 곰과 호랑이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환웅은 그 곰과 호랑이에게,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자신이 주는 신령한 쑥과 마늘을 먹고 100일간 햇빛을 보지 말라고 했다. 호랑이는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동굴을 뛰쳐나왔고, 곰은 그 시간을 견뎌 삼칠일 만에 사람이 되어 후에 단군의 어머니가 되었다.

곰과 호랑이 마늘 - gomgwa holang-i maneul

단군신화를 다시 읽으며 단군신화 속 곰과 호랑이는 어쩌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우리의 두 가지 모습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 멋진 존재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하지만 우리 중 일부만 곰처럼 거듭나기에 성공하고 대부분은 호랑이처럼 실패하는 것이 사실이다.

변화가 어려운 것은 변화를 위해 견뎌야 하는 시간의 무게 때문이다. 그래서 변화를 원한다면 변화가 이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참고 견뎌야만 한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어리석게도 변해야지 하고 마음만 먹으면 바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인 양 조급해한다. 섣불리 실망하고 성급히 좌절한다.

그렇다면 호랑이가 견디지 못한 그 시간의 무게를 곰은 어떻게 참고 견딜 수 있었을까?

그 답은 ‘믿음’에 있었다. 신화 속의 곰에게는 호랑이에게 없었던 세 가지 굳건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세 가지 믿음이란 첫째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믿음, 둘째 자신이 추구하는 변화의 가치에 대한 믿음, 그리고 셋째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풀이된다.

우선 곰은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환웅의 말을 믿었다. 반면에 호랑이는 시간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환웅이 제시한 방법을 의심스러워했을 것이다. 어떻게 쑥과 마늘을 먹고 햇빛을 100일간 안 본다고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급기야 동굴을 뛰쳐나가게 만들었을 것이다.

또 곰은 자신이 추구하는 변화의 가치에 대해 굳은 믿음을 가졌을 것이다. 사람이 되는 것이 진심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었기에 시간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호랑이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과연 가치 있는 것일까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애초부터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자 했던 것은 스스로 원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를 맹목적으로 따라갔을 수도 있다.

그리고 곰은 스스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거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에 세상에서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 내내 자신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다지고 또 다졌을 것이다.

새해 아침, 다시 단군신화를 읽으면서 단군신화를 통해 우리 조상들이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 하나를 더 들을 수 있었다. 거듭나기는 시간의 무게를 견뎌야 가능하며, 그 시간의 무게를 견디는 힘은 믿음에서 나온다는 이야기 말이다.

글 · 신지영 2015.1.5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석사·박사 수료, 영국 런던대학교 언어학 박사,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대검찰청 과학수사자문위원, 주요 저서로 <한국어의 말소리> <말소리의 이해> <열려라, 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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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열린 ‘개천절’, 단군신화의 숨은 의미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말 들어보셨죠?
무려 5천여 년 전에 국가를 세웠다는 것인데요.
삼국유사에 처음 기록된 단군신화 속에
그 시절 건국 이야기가 담겨있답니다.
개천절을 맞아 단군신화를 다시 살펴볼까요?

음력 103일 하늘의 문을 열고 인간 세계에 내려왔다는 환웅!환웅을 찾아온 곰과 호랑이는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간청해요. 이에 쑥과 마늘을 먹으며 100일을 버티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는데요. 호랑이는 중도에 포기하지만 곰은 끝까지 버텨 사람이 되죠. 이렇게 인내하며 인간이 된 곰은 환웅과 결혼해 단군을 낳게 되는데요. 신의 아들과 인간이 된 곰 사이에 태어난 사람이 바로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이에요.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를 시작으로 다양한 책들에 기록돼 있답니다.

고조선은 청동기에 만주 요령 지방과 한반도 서북 지방에 자리 잡았던 나라였어요. 청동으로 만든 비파형 동검과 당시의 생활상을 엿보게 해주는 미송리식 토기와 같은 유물. 그리고 8조법과 같은 질서 유지 체계들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우리민족 첫 국가였던 만큼 매우 의미가 깊지만 단군의 탄생이 단순히 신화로만 치부되어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기도 한데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단군신화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자는 움직임도 있어요. 곰이 인간으로 변하는 등 조금 과장된 면이 있으나 신화나 설화가 아닌 역사로 보자는 것이죠.

앞서 말한 한반도 북쪽 지역은 당시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이들은 나무나 동물과 같은 자연물을 자기 부족의 상징으로 삼으며 살아갔는데요. 사회가 발달하며 부족들의 힘에는 격차가 생기게 되고, 국가 또한 더 커질 필요가 있었어요. 결국 가장 힘이 센 부족이 통합의 주축이 되었겠죠? 하늘 문을 열고 인간 세상에 내려온,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인 환웅의 짝으로는 그만큼이나 힘을 가진 부족이 필요했어요. 여기서 쑥과 마늘로 시험을 받은 곰과 호랑이는 곰을 숭상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숭상하는 부족을 뜻하는데 일대에서 가장 강력한 두 부족이었을 거예요. 시험이었든, 전쟁이었든 단군을 낳은 사람은 더 강력했을 곰 부족의 여인이었겠죠.

하늘의 아들과 곰 부족의 여인 사이에 태어난 단군! 단군이 세운 강한 나라에 속하게 된 고조선 사람들은 매우 자부심을 느꼈을 거예요. 건국신화는 현실보다 과장된 이야기를 통해 국민들간의 결속력을 다지고, 건국에 대한 당위성을 주기 위한 이야기거든요.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가면 단군은 단군왕검이라고도 불리는데요. 단군은 종교적 지도자, 왕검은 정치적 지배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제사장의 역할과 왕의 역할을 모두 한 것이죠. 환웅이 운사, 우사, 풍사를 데리고 내려왔다는 사실까지 생각해보면 아마도 단군왕검이 지낸 제사는 농사의 풍년을 비는 의미가 강하지 않았을까요?

  이 이야기는 우리가 반만년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여러 가지 사실을 기반으로 추측한 내용일 뿐이에요. 여러분도 어떻게 단군과 고조선이 탄생했을지 상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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