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건국 년도 - iseula-el geongug nyeondo

이스라엘국
מְדִינַת יִשְׂרָאֵל‎
이스라엘 건국 년도 - iseula-el geongug nyeo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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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국가희망(하티크바)
이스라엘 건국 년도 - iseula-el geongug nyeondo
수도텔아비브(사실상)
(예루살렘을 수도로 주장1) 북위 32° 04′ 00″ 동경 34° 47′ 00″ / 북위 32.066667° 동경 34.78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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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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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정치
정치체제공화제, 단일국가, 내각제
대통령
총리
이츠하크 헤르초그
야이르 라피드
역사
독립 
 • 독립영국으로부터 독립
1948년 5월 14일
지리
면적20,770–22,072 (150 위)
내수면 비율약 2.71
시간대IST (UTC+2)
DSTIDT (UTC+3)
인문
공용어히브리어
데모님이스라엘인
민족

  • 유대인 74.2%
  • 아랍인 20.9%
  • 기타 4.8%

인구
2021년 어림9,383,990명 (99위)
인구 밀도425명/km2 (35위)
경제
GDP(PPP)2020년 어림값
 • 전체$3,723억 (51위)
 • 일인당$40,336[1] (34위)
GDP(명목)2020년 어림값
HDI0.919 (19위, 2019년 조사)
통화신 셰켈2 (ILS)
종교
종교

  • 유대교 74.2%
  • 이슬람교 17.8%
  • 기독교 2.0%
  • 드루즈교 1.6%
  • 기타 4.4%

기타
ISO 3166-1376, IL, ISR
도메인.il
국제 전화+972
1현재 예루살렘 서부는 이스라엘, 동부는 팔레스타인(요르단 강 서안 지구)이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실질적인 수도 역할은 최대 도시인 텔아비브가 맡고 있는 실정이다.

이스라엘국(히브리어: מדינת ישראל 메디나트 이스라엘, 아랍어: دولة إسرائيل 다울라트 이스라일[*], 영어: State of Israel), 약칭 이스라엘(히브리어: ישראל, 아랍어: إسرائيل 이스라일[*], 영어: Israel)은 중동·서아시아에 유대인들이 세운 국가이다. 비교적으로 작은 지역이지만 지리적으로 다채로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2] 기본법에서 스스로 민주 국가임을 정의하고 있다.

국가 수립[편집]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가 영국의 위임 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의 강제적인 분할 계획을 채택하여 실행을 추진하였으나, 이에 동의한 유대인과 달리, 이에 동의하지 않은 아랍인은 추후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된다. 1948년 5월 14일, 세계 시오니즘 단체 경영이사, 그리고 팔레스타인 유대인 기구의 대통령 다비드 벤 구리온은 "에레츠 이스라엘에서 유대 국가를 수립하고 이스라엘 국가로 한다"고 선언했다.

독립[편집]

1948년 5월 14일, 영국의 위임통치 종료와 함께 독립이 되었다.[3][4] 영국군이 철수한 다음날 동시에, 근처의 아랍 군대는 팔레스타인을 침공하고, 이스라엘 군대와 싸웠다. 이스라엘은 여러 번의 중동 전쟁을 하는 동안[5] 요르단 강 서안 지구, 시나이반도 (1967년 ~ 1982년 사이), 남레바논(1982년 ~ 2000년 사이), 가자 지구와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6][7][8][9][10]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지역을 부분 합병했지만, 요르단 강 서안 지구와의 국경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요르단과 평화 조약을 체결했지만,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은 여전히 이 지역의 갈등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인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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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기준으로, 이스라엘 인구는 9,343,140명으로 추산되었으며, 이 중 74.2%는 이스라엘 정부 당국에 유대인으로 기록되었다.[11] 아랍인들은 전체 인구의 20.9%를 차지하며, 반면 정부 등기소에 등록된 비아랍계 기독교인 및 무신론자들은 4.8%이다.[11] 지난 10년간, 루마니아, 태국, 중국, 아프리카, 남미에서 온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이스라엘에 정착했다. 정확한 수치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들의 많은 수는 불법으로 거주하며,[12] 이들의 수는 166,000명[11]에서 203,000명 사이로 추정한다[13] 2012년 6월 무렵으로, 대략 60,000명의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이스라엘에 들어왔다.[14] 이스라엘인의 대략 92%는 도시 지역에 거주한다.[15] OECD가 2016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스라엘인들의 평균 수명은 82.5세로, 세계에서 6번째로 높았다.[16]

이스라엘은 다민족국가로서 대부분의 이스라엘의 아랍인들은 이슬람교도이며, 네게브 사막의 베두인족과 같이 비교적으로 적지만 중요한 집단이다. 나머지는 기독교인들과 드루즈인이다. 그 외의 다른 소수 민족들에는 마론파, 사마리아, 아프리카계 히브리인,[17] 아르메니아인, 체르케스인 등이 있다. 이스라엘은 또한 비시민권자 외국인 노동자들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망명 신청자들로부터 이민을 받는다.

역사[편집]

고대 이스라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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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위치하는 지역은 고대에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알려진 지역이며, 가나안의 땅이라고도 불려, 가나안인을 비롯한 여러 민족이 살고 있었다. 성경의 기술에 의하면, 유대인의 선조에 해당하는 히브리인 또한 이 지역에 거주를 위해 이동해왔으나, 그 자손은 이집트로 이주하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집트인의 노예 취급을 받았다. 이윽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이 지역으로 돌아온 히브리인(이스라엘인)은 이 지역을 정복하여 기원전 11세기 경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18]:8~20다윗과 솔로몬을 거쳐, 기원전 930년 경, 내란으로 인해 이스라엘 왕국은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멸망당하며, 남쪽의 유다 왕국은 기원전 586년에 신바빌로니아에 멸망당했다. 신바빌로니아 기원전 539년에 페르시아 제국에 멸망하며,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에 의해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다. 그 후 이 지역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중에 정복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후, 마케도니아는 분열하여, 팔레스타인과 유대 지역을 셀레우코스 제국(시리아 왕국)와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이집트)이 각각 다른 시기에 지배하게 되며, 마카베오 전쟁을 거쳐 유대인의 왕국 하스몬 왕조가 세워졌다.[18]:53~59

기원전 1세기경 하스몬 왕조는 로마 제국의 보호국이 되며, 그 후 로마 제국의 속주인 유대 속주가 된다.[18]:63~64 기원후 66년 제1차 유다 전쟁이 발발하나, 70년 로마 제국에 의해 진압된다.[18]:75~79 132년 바르 코크바의 난(제3차 유다 전쟁)이 일어나, 135년 다시 로마 제국에 진압되어, 시리아의 속주가 되었다.[18]:82~89[19][20] 이후 유다인들은 중동 전역으로 흩어지며, 난민들이 세운 디아스포라가 다수 발생하게 된다.[18]:98~99

중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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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년 동로마 제국이 정통 칼리파에 패배한 이래, 오스만 제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의 패권은 거의 이슬람 국가 밑에 놓이게 된다. 1099년 제1차 십자군 전쟁 시기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 국가 예루살렘 왕국이 세워지기도 하였으나, 1187년 하틴 전투에서 아이유브 술탄국에 의해 예루살렘은 다시 점령되어, 1200년 즈음에는 예루살렘 왕국의 세력은 지중해 연안으로 국한되게 된다. 예루살렘 왕국은 1291년 맘루크 술탄국에게 패하여 멸망하며, 1517년 오스만 제국이 맘루크 술탄국을 멸망시키고 이 지역을 지배한다.[21]

현대 이스라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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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텔 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한 다비드 벤구리온. 그는 이스라엘의 총리였다.

제1차 세계 대전에 동맹국으로 참전하여 패전한 오스만 제국은 현재의 터키를 제외한 중동 지역 대부분을 영국과 프랑스에 내주게 되며, 트랜스요르단 (지금의 이스라엘이 위치한 곳. 지금은 팔레스타인으로 불림) 지역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오스만의 세금 정책에 의해 황무지가 되었던 트랜스요르단은 유대인들과 아랍 유민들이 유입되어 여기저기 공동체 마을들이 형성되었다.

현대 이스라엘은 19세기의 시온주의 운동과 20세기 제 2차 세계대전 중 발생한 유대인 학살을 배경으로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을 위임 통치하던 영국은 이중적으로 아랍 측에게 맥마흔 선언을 하여, 샤리프 후세인에게 아랍인들이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면 칼리프 중심의 아랍인의 나라를 이 땅에 지어주겠다는 보장을 하였고, 1916년 6월 5일을 기하여 봉기를 일으켜 스스로 아랍의 왕임을 자처했다. 이후 1917년, 유대인의 지원을 받기 위하여 영국의 외무장관 밸푸어가 가나안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밸푸어 선언을 하여, 1920년 영국의 공식 외교 정책이 되었다. 하지만 아랍과 유대인에게 이중적인 약속을 함에 따라, 추후에 유대인과 아랍인 간의 갈등을 유발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영국군이 위임통치령 지역을 철수하기 이전부터 이주 유대인과 아랍인 간 테러와 학살같은 국지적인 충돌이 있었고, 유대인과 아랍인들은 자치 민병대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후, 영국의 공식적인 철군이 이뤄진 다음날, 이스라엘은 공화국을 선포하였고 그 동시에 아랍인들의 물리적인 침공을 받게 된다. 이것이 제1차 중동 전쟁이다. 이후 유대인들은 기존 이르군과 하가나 등 극우 시온주의 민병대를 확대하여 방위력을 증강시켰다. 이스라엘은 서방으로부터의 무기지원을 받아 아랍 연맹을 물리치고 제1차 중동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제 1차 중동 전쟁의 경우에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의 지원은 없었고, 되려 전후 피로감에 영국, 프랑스, 미국 어느 나라도 이스라엘에 무기 지원은 커녕 판매조차 소극적이었던 탓에 쏟아지던 전후 물자들을 매입하여 방위력 공백을 메꾸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후 제2차 중동 전쟁(시나이 전쟁)과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차후 중동 전쟁들에서 서방의 지원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국가들은 아라비아 지역에서의 유대인 국가 건설에 부정적이었고, 이후 유대인-아랍인 간의 충돌은 지속되었다. 한편, 팔레스티나 지역(가나안 연안)의 아랍인들은 스스로를 팔레스타인 주민, 그들의 거주 구역을 팔레스타인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팔레스타인이라는 공동체가 본래 토착민으로서 거주하고있던 것이 아니라, 20세기 유대인들의 이주와 동시에 이 지역으로 밀려들어온 아랍인들을 뜻한다. 장기간에 걸친 팔레스타인과의 분쟁 결과, 1993년에 PLO와 자치에 합의하여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 세워졌으나 현재까지도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에 복수를 다짐하던 안와르 사다트가 이집트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다시 중동에는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1973년 10월 6일, 드디어 이집트는 유대인들의 속죄일 욤키푸르 당일 이스라엘이 점령중이던 시나이반도를 기습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제 4차 중동전쟁)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집트 방면으로는 본토까지 시나이반도 지역이 완충지 역할을 하였으나, 북부 골란 고원을 넘어서는 시리아군은 바로 본토로 들어오기 때문에, 전략상 시리아군이 포진한 곳을 공습하면서 전세를 역전하기에 이르렀으며 끝내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까지 승리로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 또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자연 환경[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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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지도

지리[편집]

이스라엘은 북쪽으로는 레바논, 북동쪽으로는 시리아, 동쪽으로는 요르단, 남서쪽으로는 이집트, 서쪽으로 지중해와 접해 있다. 이스라엘은 지리적 특징상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가까우며 민족적 특성상으로도 오히려 아프리카인 이집트에 가깝다. 바다와 사막의 사이에 펼쳐진 지역으로 특이한 기후로 인하여 이웃 민족 간에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팔레스틴은 여러 작은 지역들로 나뉘어 있는데 이 작은 지역들은 서로 전혀 판이하다. 이들은 해안평야 지대, 구릉 지대, 중앙 산맥 지대, 요르단 계곡 지대, 트랜스요르단 지대, 그리고 북쪽과 남쪽의 이스르엘 평야 지대와 네게브 광야 지대 등이다.

기후[편집]

이스라엘의 기후는 작은 면적에 비해 상당히 복잡한 편이다. 이스라엘의 기후 분포를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이 열대성 기후와 온대성 기후의 교차 지점에 있고, 지중해와 아라비아 사막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여러 지역간의 지형적인 차이점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이스라엘의 기후는 열대성 기후와 온대성 기후로 뚜렷하게 교체되는 계절현상을 보여준다. 연중 4월에서 10월 사이엔 덥고 건조한 긴 여름이 계속되며,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의 겨울은 온난하고 다습하다. 이스라엘은 일년이 여름과 겨울로 양분되는 지역이다.

이스라엘 기후는 계절이 뚜렷하게 교차되는 특성으로 인해 더위, 추위, 이슬, 서리, 바람, 눈, 얼음 등의 다양한 기후 현상을 보인다. 해안은 전형적 지중해성 기후여서, 여름에는 32 ~ 37°C까지 올라간다. 한편 고원지대는 더욱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를 보여서 여름에도 지내기 쉽고, 겨울에도 간간이 내리는 비 사이에 밝은 태양이 비치기도 한다. 남부 네겝 지방은 사막 기후이기에 여름에도 밤에는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며 대체로 겨울에 지내기 좋은 기후이다. 예루살렘 등의 고원지대는 더욱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를 보이며, 겨울에도 비와 밝은 태양을 볼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은 지정학적으로 서쪽의 지중해라는 큰 바다와 동쪽의 거대한 아라비아 사막 사이에 끼어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열대성 기후와 지중해성 기후가 교차하는 독특한 기후조건을 지니고 있다. 여름철에는 건조하고 뜨거운 열기의 바람으로 견디기 힘든 여름철 기후를 형성한다. 그리고 겨울철에는 건조하고도 차가운 바람으로 체감 온도를 더욱 낮게 만든다. 유다 광야와 사해 주변 지역은 사막기후의 영향력이 크게 나타나는 대표적 지역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목축문화가 발달했다.

이스라엘의 기후를 결정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이스라엘 각 지역의 지형적 차이다. 지형의 높고 낮음의 차이는 이스라엘에서 강우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약 9개월 동안의 건기 때는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는 날씨가 계속된다. 바다에 가까운 해안 평야나 중앙 산지의 서편 곧 바다 쪽에 연한 기슭에는 농경에 충분한 양의 비가 내리며, 여름철에도 다른 어느 지역보다 많은 양의 이슬이 내린다. 따라서 이스라엘에서는 바다에 가까울수록 비옥한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편집]

이스라엘의 우기철은 이른비, 겨울비, 늦은비가 내리는 세 시기로 구분된다. 이른비는 겨울철이 시작기인 10월 ~ 11월경에 내리는 비다. 그 양은 여름 동안 극도로 건조해진 땅에 물기를 뿌려주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른비로 인하여 여름철 동안 마른 땅은 부드러워 지고, 농부들은 땅을 기경하여 파종할 수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서는 이른비가 적당한 시기에 내려야 파종을 제때에 할 수 있다. 사막이나 광야지역에도 이른비가 내림으로 목축을 위한 초지가 형성되기 때문에 이른비는 유목민들에게도 매우 중요하였다.

장마비 또는 겨울비는 12월에서 2월 사이에 내리는 본격적인 비이다. 일년 중에 내리는 강우량의 대부분이 이 기간 동안에 내린다. 때로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소낙비가 내려 계곡에는 갑작스럽게 급류가 흐른다. 고대 이스라엘은 장마비를 방수가 잘 되어있는 저수조에 모아 여름철 급수를 대비하였다.

‘봄비’라고도 명명되는 늦은비는 3월-4월경에 내린다. 늦은비는 겨울동안 자란 농작물의 마지막 결실을 충실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늦은비는 곡식의 결실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늦은비를 축복의 단비라 불렀다.

강우량은 지역별로 다른데, 중앙산지는 다른 지역보다 많은 비가 집중적으로 내린다. 산간지역에 내리는 대부분의 겨울철 빗물은 석회암층을 침투하여 땅 깊은 곳에 형성된 지하수층으로 내려가며, 이러한 지하수들은 곳곳에서 샘을 이루어 땅 위로 분출한다. 이스라엘에서의 강우량과 비가 내리는 날수는 남쪽보다 북쪽으로 갈수록 많아진다. 또 산지에서의 강우량은 사막에 인접한 동편 기슭보다 바다에 인접한 서편 기슭이 언제나 많다. 그리고 물의 증발 정도는 태양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는 남쪽에서 보다 더 크다. 이 세 가지 요소를 종합하여 볼 때, 이스라엘에서의 서쪽지역과 북쪽지역은 남쪽지역과 동쪽지역보다 강우량이 더 많고 농작물의 재배에도 적합한 지역이다.

정치 및 외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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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공화정이며 의원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대통령은 의례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스라엘의 정당 참조) 현재 총리는 2009년 3월 31일 취임한 베냐민 네타냐후이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 161개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94개의 대사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와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으며, 상당수 이슬람 국가들과는 외교 관계도 없고 이들 국가는 이스라엘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아랍 연맹 회원국 중에서는 이집트, 요르단과만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이집트와는 1979년에, 요르단과는 1994년에 평화조약을 각각 체결하였고, 모리타니는 1999년에 이스라엘과 완전한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으나 최근 단교했다. 역시 이슬람 국가인 이란과도 외교 관계가 없으며,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파키스탄 등 일부 남아시아·동남아시아의 이슬람 국가와도 외교 관계가 없다. 비이슬람권 국가 중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쿠바(쿠바 혁명 이후)는 최근 이란과 중국 같은 반미주의적 핵무기 보유국들의 동맹국이면서 시리아나 베트남 라오스 베네수엘라 이라크나 영국 북아일랜드의 아일랜드 공화파 마르크스주의 단체, 콜롬비아의 FARC 무장단체 및 기타 반이스라엘 무장단체에게 핵 기밀 정보들을 공유한다는 이유로 테러국가로 간주하고 있으며, 최근 가자 지구 사태로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정권 국가인 니카라과·베네수엘라·볼리비아 그리고 쿠바와 외교관계가 단절되었다. 이스라엘 주변의 이슬람교 국가들이 엘알 이스라엘 항공 등 이스라엘 국적 항공사나 대한항공 등 제3국가 국적의 항공사 소속 비행기들이 자국 영공 통과를 금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이스라엘 관계[편집]

대한민국과는 1950년 한국 전쟁에서 의료 부대를 파병한 이후, 1962년 4월 수교하여 지금까지 계속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62년 5월 7일경, 이스라엘은 주일 이스라엘 대사 다니엘 레빈을 한국 대사직(비주재)에 겸임하도록 임명하였다.[22] 그러나 대한민국이 원유 수급과 건설시장 확보를 위하여 아랍 국가와의 관계를 강화하자,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위축되었다. 이스라엘은 1978년 주한 대사관을 폐쇄하고, 주일 대사관에서 대한민국 관련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여 양국의 관계는 다소 소원해졌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커져, 양국은 1992년과 1993년 상주 대사관을 각각 재개설하였고, 다시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대한항공이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주 3회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취항하며 이 때는 이스라엘의 적국 영공을 통과하지 않기 위해 지중해 쪽으로 돌아가는 항로를 이용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관계[편집]

한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팔레스타인, 이란, 이라크, 파키스탄, 시리아, 방글라데시, 요르단, 그리고 레바논의 헤즈볼라 세력과 예멘의 후티 반정부군 밑 기타 아랍 국가들을 지지 및 지원하고 있어서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으며, 서로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23]

이스라엘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현재까지 양국간의 외교관계가 없다. 특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이스라엘의 적국인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며 국교를 수립하였고 아랍-이스라엘 분쟁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이스라엘의 적이었던 이집트, 시리아 등에 군사 지원을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서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다. 또한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이라크 이슬람 민병대같은 친-이란 시아파 이슬람 무장 반군 단체나, 영국 아일랜드의 마르크스주의 무장 단체 IRA 및 콜롬비아의 친-차베스주의 FARC 게릴라 무장단체, 또는 이스라엘의 동맹 에티오피아의 적국인 에리트리아랑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에티오피아의 티그레이 반군 단체에게 무기 기밀을 공유하고 다닌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은 이러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테러지원국으로 보고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시 현재까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이스라엘은 미국과 더불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적국으로 여기는 나라이기도 하며 이스라엘이 미국의 동맹국이기도 하여서 적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편집]

이스라엘과 미국은 건국 이래로 최대이자 친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스라엘과 아랍의 문제에서도 이스라엘을 적극지지하는 노선을 취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 가입여부에 대해서도 양국은 반대 입장을 나타냈으며 정치 외에도 군사면에서 상호간의 교류를 통해서 동맹을 과시하였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이스라엘을 적극 지지하며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공식 수도로 인정하고 주(駐)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고 선언하였다.[24][25]

시리아와의 관계[편집]

이스라엘과 시리아 양국 정부는 2008년 5월 이후, 터키의 중재로, 간접 평화교섭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여름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가 사의를 표명하여 교섭도 중단되었고 게다가 같은 해 말,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을 이유로 시리아는 교섭 동결을 표명하였다. 최대의 쟁점은 골란고원의 귀속문제인데, 시리아와 이란 간의 관계, 시리아가 지원하는 레바논의 시아파 조직 헤즈볼라와 예멘의 시아파 조직 후티 반정부군과의 무장문제, 그리고 친 이스라엘 성향을 지닌 시리아의 마론파 단체의 탄압문제 등도 교섭 과제이다. 미국의 오바마 정권은 시리아와의 관계 수복을 도모하여, 평화교섭재개의 환경을 조성하는데 열의를 보이고 있다. 또한 2009년 3월에 발존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도 교섭재개의 원칙을 향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은 골란 고원 반환에 소극적이고, 시리아도 또한 이 정권에 강한 불신감을 표명하고 있는 등, 교섭재개를 향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아직 없다.[26]

행정[편집]

행정 구역[편집]

자국 헌법상의 수도는 예루살렘(히브리어로는 '예루샬라임', 아랍어로는 '알 쿠드스')이지만 국제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텔아비브가 사실상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지명은 대부분 성경에서 차용한 이름을 사용한다.

국방[편집]

이스라엘 건국 년도 - iseula-el geongug nyeondo

이스라엘은 인접 아랍국가들과 팔레스타인과의 잦은 분쟁 때문에 징병제를 채택한 국가로서 남자와 여자 모두 병역 의무를 지고 있고 병역 기간은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에서 3년 동안 복무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특히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과 드루즈교를 믿는 사람들은 군에 복무해야 한다. 1995년부터 폭력에 반대하는 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를 허용하고 있는데 정부의 까다로운 검증을 거쳐야 한다. 본인이 이슬람교 신자이거나 무종교인 사람이라면 징집이 되지 않으나 자원입대는 허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방위군(약칭 IDF)은 미국제 최신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오랜 기간동안 미국의 묵인 혹은 지원하에 핵무기를 개발하여 주변 국가들을 겨냥해 네게브 사막 깊숙한 곳에 수백기의 핵탄두를 숨겨놓았다. 비공식 핵 보유국이다.

이스라엘은 선진국들 중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와 오만 다음으로 가장 높은 GDP 대비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는 나라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이스라엘의 보안 조직들 중 유일한 군사 조직이며 내각에 속한 참모총장의 지휘를 받고 있다. IDF는 육군, 해군, 공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기간 동안 건국 이전부터 존재했던 하가나 같은 준군사조직들이 통합되면서 세워졌다. IDF는 또한 군 정보부에 많이 의지하며 짧은 역사 속에서 여러 주요 전쟁들과 국경 분쟁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실전에 능숙한 군대가 되었다.

최선임자는 합동참모의장 격인 최고사령관이 소장이다.

경제[편집]

이스라엘 건국 년도 - iseula-el geongug nyeondo

초기에는 미미 하였지만, 이스라엘의 경제는 오히려 주변 아랍국가를 뛰어넘고 있는 실정이다. 이스라엘은 종횡단거리가 짧아서 자동차, 버스, 트럭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도 쉽게 갈 수 있게 해주는 광범위한 도로망이 주요한 교통수단이 되고 있다. 철도는 전국으로 예루살렘, 텔아비브, 하이파, 나하리야를 오가고 있다.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주요 국제 공항이다.[27]

무역[편집]

2017년 기준으로 이스라엘의 주요 수출 상대국은 미국(27.89%), 영국(8.45%), 홍콩(6.9%), 중국(5.41%)이다. 주요 수입 상대국은 미국(11.7%), 중국(9.44%), 스위스(7.96%), 독일(6.83%), 영국(6.23%)로 주요 수출입 상대 국가는 근방국인 아랍국가에 대비하여 제1세계의 비중이 높다.

2017년 기준으로 총수출액은 61,150백만 달러, 총수입액은 69,116백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 품목은 가공 다이아몬드(12,294백만 달러, 약 구성품(3,841백만 달러), 의약품(3,091백만 달러), 모놀리식 회로, 디지털 제품(2,711백만 달러), 비가공 다이아몬드(2,396백만 달러)이다. 주요 수입 품목은 석유(4,490백만 달러), 비가공 다이아몬드(3,447백만 달러), 가공 다이아몬드(3,289백만 달러), 석유(1,933백만 달러), 사진 장비(1,863백만 달러)이다.[28]

도로[편집]

이스라엘에는 공도(公道)라는 도로가 있다. 예를 들자면 공도 제1호선 (이스라엘), 공도 제40호선 (이스라엘), 공도 제60호선 (이스라엘), 공도 제90호선 (이스라엘) 등과 같은 공공도로를 줄여서 공도(公道)라고 가리키나, 이는 일반 국도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사회[편집]

국민[편집]

유대인이 대부분이고, 팔레스타인인과[29]그 밖에 많은 소수민족이 있다. 한국인은 유학이나 사업 관계로 소수가 거주한다. 유대인은 건국 이후 주변 아랍 국가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유입되어 그 수가 크게 불어났으나, 최근에는 팔레스타인인의 출생률이 높아 팔레스타인인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 국적의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 국민으로서 법적으로 유대인과 동등한 지위를 보장받으며(단, 무슬림인 경우 군복무 의무는 없음), 국회에는 의석의 일정 비율은 팔레스타인인에게 의무적으로 배당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에서 소수인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고, 교육과 취업의 기회도 적기 때문에 유대인에 비해 사회·경제적 조건이 열악하다.[30][31]

언어[편집]

이스라엘 건국 년도 - iseula-el geongug nyeondo

이스라엘 건국 년도 - iseula-el geongug nyeondo

이스라엘의 고속도로 표시판 - 히브리어, 아랍어 및 영어 표기

히브리어가 공용어이다. 히브리 문자와 아랍 문자 표기 방식은 모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특히, 히브리어는 이스라엘의 국가 언어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약 30년에 걸친 영국의 신탁 통치와 미국에서 건너온 많은 이주민의 영향, 정부의 영어 교육으로 영어도 제2언어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그래서 모든 도로 및 공공장소의 표지에는 히브리어, 아랍어, 영어를 함께 표기한다. 아랍어는 2018년 7월 19일까지 공용어로 지정되었는데, 유대민족법이 제정되면서 특수지위의 언어로 격하되었다. 요르단, 이집트, 레바논계 유대인은 아랍어 사용을 많이 한다. 한편 소련에서 건너온 유대인도 많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아랍어 다음으로 많다.

교육[편집]

문맹률은 중동 국가 중에서 가장 낮다.[32] 의무교육은 1학년에서 12학년까지다. 나라 전체에 여덟 개 대학이 있고 여러 단과 대학이 있다. 예루살렘에 위치한 히브리 대학교는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킹사우드대학교와 함께 200위 안인 대학교다.

문화[편집]

종교[편집]

이스라엘 건국 년도 - iseula-el geongug nyeondo

수도인 예루살렘에는 수많은 유대교, 이슬람교와 기독교 성지가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유대교가 약 80% 이상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종교이며, 수니파 이슬람교, 기독교, 메시아닉쥬, 드루즈교 등이 존재한다.[33]

관광[편집]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성지로 세계 3대 종교의 성지순례객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베들레헴, 나사렛, 갈릴리 지역들은 예루살렘과 함께 종교 관광지로서 각국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단, 레바논 접경지역과 가자지구는 군사적 분쟁과 테러 위험이 존재한다.

스포츠[편집]

이스라엘은 지리적으로 아시아에 위치한 나라이지만 아랍권 국가들, 이슬람권 국가들과의 정치적 분쟁으로 인해 아시아의 여러 스포츠 기구에서 축출되었고 현재는 유럽의 여러 스포츠 기구에 가입한 상태이다.

음식[편집]

이스라엘 건국 년도 - iseula-el geongug nyeondo

이스라엘 요리는 현지 음식뿐만 아니라 디아스포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유대인 음식을 포함한다. 1948년에 국가가 수립된 이후로,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 이스라엘 퓨전 요리가 개발되었다. 이스라엘 요리는 미즈라힘, 스파라딤 및 아슈케나짐 형식의 요리 요소를 채택하여 계속 적용하고 있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팔라펠, 훔무스, 샤크슈카, 쿠스쿠스 및 자타르와 같은 레반트, 아랍, 중동 및 지중해 요리에서 먹는 많은 음식을 포함한다. 슈니첼, 피자, 햄버거, 감자 튀김, 쌀과 샐러드도 이스라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각주[편집]

  1. Israel's per capita GDP adjusted for purchasing power parity (PPP)
  2. “보관된 사본”. 2018년 12월 2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12월 22일에 확인함.
  3. http://www.mfa.gov.il/mfa/foreignpolicy/peace/guide/pages/declaration%20of%20establishment%20of%20state%20of%20israel.aspx
  4. http://www.mfa.gov.il/mfa/aboutisrael/history/pages/zionist%20leaders-%20david%20ben-gurion.aspx
  5. Gilbert, Martin (2005). The Routledge Atlas Of The Arab–Israeli conflict (8th ed.). Routledge. ISBN 0-415-35900-7.
  6. 〈The status of Jerusalem〉 (PDF). 《The Question of Palestine & the United Nations》. United Nations Department of Public Information. East Jerusalem has been considered, by both the General Assembly and the Security Council, as part of the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y.
  7. BBC News (2006년 3월 29일). “Analysis: Kadima's big plans”. 2010년 10월 10일에 확인함.
  8. Kessner, BC (2006년 4월 2일). “Israel’s Hard-Learned Lessons”. Homeland Security Today. 2012년 4월 26일에 확인함.
  9. Kumaraswamy, P. R. (2002년 6월 5일). “The Legacy of Undefined Borders”. Tel Aviv Notes. 2013년 3월 25일에 확인함.
  10. “Israel Journal: A Land Without Borders”. 《The Epoch Times》. 2013년 9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3월 20일에 확인함.
  11. ↑ 가 나 다 Israel's Independence Day 2019 (PDF) (보고서). Israel Central Bureau of Statistics. 2019년 5월 6일. 2019년 5월 7일에 확인함.
  12. “ISRAEL: Crackdown on illegal migrants and visa violators”. 《IRIN》. 2009년 7월 14일.
  13. Adriana Kemp, "Labour migration and racialisation: labour market mechanisms and labour migration control policies in Israel", Social Identities 10:2, 267–292, 2004
  14. “Israel rounds up African migrants for deportation”. 《Reuters》. 2012년 6월 11일. 2015년 9월 2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1년 4월 28일에 확인함.
  15. “The Land: Urban Life”. Israel Ministry of Foreign Affairs. 2013년 6월 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6. “Health status – Life expectancy at birth – OECD Data”. 《theOECD》.
  17. http://www.globalpost.com/dispatch/israel-and-palestine/090430/israels-black-hebrews
  18. ↑ 가 나 다 라 마 바 Cecil Roth(長谷川真・安積鋭二 번역) (1997년). 《ユダヤ人の歴史》. みすず書房. ISBN 978-4622049081.
  19. Shimon Applebaum (1989). 《Judaea in Hellenistic and Roman Times: Historical and Archaeological Essays》. Brill Archive. 93쪽. ISBN 978-9004088214.
  20. イスラエル外務省 『イスラエルの情報』 p.20
  21. イスラエル外務省 『イスラエルの情報』 pp.22-25
  22. “駐韓이스라엘大使...레駐日大使가兼任”. 동아일보. 1962년 5월 9일. 【예루살렘7日로이타同和本社特約】 駐日 이스라엘 大使 다니엘 레빈 博士는 한국대사직 (비주재)을 겸임토록 임명되었다고 예루살렘에서 발표되었다.
  2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이스라엘 Archived 2013년 10월 4일 - 웨이백 머신 참조.
  24.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11&aid=0003554228
  25.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5&aid=0001183828
  26. 다테야마 료오지 (立山良司) 외 1. 〈中東〉. 《현대용어의 기초지식(現代用語の基礎知識)》 (일본어). 지유고쿠민샤(自有国民社). 555쪽. ISBN 978-4-426-10128-2.
  27.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이스라엘의 교통·도시〉
  28. World Integrated Trade Solution Worldbank
  29. Israeli Arabs: 'Unequal citizens' BBC
  30. 차별에 우는 아랍계 이스라엘인 주간동아 2007년 2월 13일
  31. 이스라엘 아랍인 사면초가 서울신문 2009년 4월 22일
  32.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Report 2005
  33. “세계기도정보”. 2006년 12월 2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6년 8월 14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이스라엘[편집]

  • 이스라엘 정부 포털
  • (히브리어/영어) 이스라엘 외교부
  • (히브리어/영어)이스라엘 국립박물관
  •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대한민국[편집]

  • 주 이스라엘 한국대사관
  • 한국 이스라엘 문화원 홈페이지
  • 이스라엘 한인회
  • 예루살렘소재 유대교회(한인)
  • 이스라엘 지역 포털 사이트(한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