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 규제 찬성 근거 - hyeom-opyohyeon gyuje chanseong geungeo

‘혐오’와 ‘혐오표현’은 최근 몇 년간 계속해서 우리 사회의 중요한 키워드이자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혐오표현에 대한 대응책이나 법적 규제는 이미 유럽이나 미국 사회에서는 오래된 논의다. 한국 사회에서도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가 이뤄져야 할지, 어떠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지에 관해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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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혐오표현 법적 규제 사례

혐오표현은 ‘Hate Speech’에 대한 번역어로 1980년대 중반 뉴욕시에서 인종적 동기로 이뤄진 살인사건들이 사회 문제화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인종차별이 심각했던 미국에서 1920년대부터 인종주의적 표현이나 인종차별 표현을 ‘Race Speech’ 등으로 부르며 명예훼손 관련 법이 적용돼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1960년대 초의 흑인민권운동을 계기로 성장한 페미니즘 운동, 성소수자 권리운동의 확산과 함께 인종뿐만 아니라 성별, 성적 지향, 종교, 나이,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특정되는 범주의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믿음이나 감정을 담은 용어로 사용하게 됐다. 하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국제사회와 유럽 국가들은 이러한 표현들을 규제해왔다.

유엔은 1948년 제노사이드협약과 1965년 인종차별철폐협약을 채택하면서 인종 등에 대한 차별과 폭력 선동 금지를 규정했으며, 1966년 자유권 규약 역시 인종, 민족, 종교적 적개심을 고취하는 차별, 적의, 폭력의 선동을 금지하고 있다. 즉 인종 등을 이유로 이뤄지는 차별·폭력 선동 표현을 규제해왔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행해진 유대인 등에 대한 집단학살의 경험을 통해 사회적 소수자, 특히 인종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선동 표현이 물리적 폭력과 집단학살에 결부될 수 있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럽 각국에서도 혐오표현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법률을 제정했다. 대표적인 국가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유럽의 혐오표현 규제> -

프랑스 언론과 자유에 관한 법
. ‘민족·국가·인종·종교’, ‘성·성적 지향·성 정체성·장애’를 이유로 개인 또는 집단에 대해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 및 모욕하는 행위
. ‘민족·국가·인종·종교에 속하는지 유무’를 이유로 개인 또는 집단에 대해 차별, 적대감, 폭력을 선동하거나, ‘성·성적 지향·성정체성·장애’를 이유로 적대감 및 폭력을 선동하는 행위

영국 공공질서법
. ‘인종적 적대감을 고무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거나’ 혹은 ‘모든 상황상 인종적 적대감이 유발될 것 같은 경우’로써 위협적, 매도적, 모욕적인 말, 행동, 글을 공개하는 경우
. 종교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위협적인 말 또는 행동을 하거나 그러한 글을 공개하는 경우

독일 형법
. ‘국적·인종·종교·민족에 의해 규정된 집단 또는 개인에 대해 증오·폭력·자의적 조치를 선동하거나, 모욕·악의적 경멸·중상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경우

캐나다 형법
. ‘피부색·인종·종교·민족·성적 지향’에 의해 특정되는 집단에 대해 그들의 집단살해를 옹호·조장하는 행위
. ‘피부색·인종·종교·민족·성적 지향’에 의해 특정되는 집단에 대해 치안상 우려가 있는 공공장소에서의 적대감 선동 행위 혹은 고의의 적대감 선동 행위(예외 규정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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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혐오표현 법적 규제 가능할까

혐오표현은 특정 속성으로 묶을 수 있는 집단을 표적해 이뤄지는 표현으로, 역사적으로 차별을 받아온 집단에 대한 부정적 편견에 기반한 적대적인 표현이다. 이때 해당 집단에 대한 차별은 변화 불가능한 인격적 구성 요소로서의 속성을 이유로 혹은 전제로 해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일시적인 차별 대상이 아니라 해당 표적집단에 장기간 축적돼 지배적인 관념으로 고착된 편견과 차별의식에 기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들은 그 대상이 되는 집단, 즉 표적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인간존엄성과 인격권을 침해한다. 단순히 욕설 등에 의한 인격의 훼손과는 달리 기존 사회에서 경험한 차별과 배제의 경험을 상기시키고 현시점에서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며 미래에도 그럴 수 있다는 좌절감을 확신시킨다. 그리고 이는 그 집단에 속한 모든 개인들에게 향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 해악성은 질적·양적으로 증대된다.

또한 혐오표현은 표적집단에 대한 차별의식을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민주적 공론장을 왜곡할 수 있다. 표적집단 구성원을 위축시켜 공론장에 참여할 실질적 기회를 박탈하며, 나아가 여타의 사회구성원들에게 그러한 적대적 사상을 확산시켜 사회에서의 차별, 나아가 제도에서의 차별을 수용하거나 정당화하도록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표적집단 구성원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을 지속·공고화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이러한 점에서 기본권 보호와 민주주의 원리 실현을 요청하는 헌법에 의해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 자체는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현행법상 혐오표현은 처벌할 수 있을까? 결론을 말하면 특정할 수 있는 개인을 향해서 욕설 등 모욕이나 명예훼손 표현의 형태로 이뤄진 혐오표현이라면 형법상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혐오표현의 경우 그 특성상 표적 대상이 되는 집단 전체에 대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상당수 처벌의 대상이 되기 힘들다. 더욱이 위 범죄의 보호법익이 사회적 평가라고 보는 통설적인 해석상 표적집단에 대한 낙인찍기의 결과로서 ‘인격적 평가’의 저하가 이뤄지는 발언이 ‘사회적 평가’에 대한 저하로 포섭되면서 혐오표현의 본질적인 성격을 포착하지 못하는 위험이 발생한다.

현행법상 규제의 한계를 인식하고, 작년만 해도 두 건의 혐오표현 규제 법안이 발의됐다.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2018.9.18. 신용현 의원 대표 발의, 같은 해 10월 11일 철회)은 정보통신망상 불법정보에 ‘인종, 지역, 성별,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반복적 혹은 공공연하게 차별하거나 이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의 정보’를 포함하는 내용을, 혐오표현 규제 법안(2018.2.13. 김부겸 의원 대표 발의, 같은 해 2월 28일 철회)은 ‘성별·장애·병력 등의 특성에 따라 규정된 집단 또는 개인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폭력·증오 선동·고취 행위, 공개적 멸시·모욕·위협하는 행위 등에 대해 금지하고, 국가인권위원회의 혐오표현 확산 방지 관련 기본 계획, 시정 명령 및 이행강제금 부과를 규정하는 한편, 법원에 의한 징벌적 손해배상 및 형사처분 등을 규정했다.

그러나 혐오표현을 줄이는 데 과연 법적 규제가 효과적인가에 대해서는 국내외 학계의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즉, 혐오표현 규제가 편견과 차별을 사회 내로 잠복시킴으로써 오히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을 잃어버리게 될 것, 규제로 인해 오히려 혐오표현 발화자를 자극하고 더 극단적인 행동으로 몰아가게 되거나 전시적인 자기 정당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 혐오표현의 표적집단들이 이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하는 것, 혐오표현의 표적집단 구성원들이 스스로 피해자라는 의식을 갖게 한다는 것 등의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표현 내용을 규제하는 법률이 이미 상당수 존재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형사규제의 대상이 되는 표현범죄, 명예훼손죄 및 모욕죄의 형사규제, 선거운동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포함해 각종 정치적 표현에 대한 형사규제, 인터넷상 표현에 대한 국가의 규제 등은 국내외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는 지적들이 이어져왔다. 한국의 현대사는 법에 의해 표현의 자유가 심하게 제한돼 왔고 여전히 문제 되는 법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 상황에서 혐오표현 규제법이 제정될 경우 동일한 연장선에서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으로 인식될 우려가 있다. 더욱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혐오표현’이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규제돼야 할 표현은 정작 규제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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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시민의식과 불평등에 대항하는 시민과 정부의 노력 필요

따라서 혐오표현의 개념과 발생 배경에 대한 시민사회와 정부의 이해가 이뤄져야 한다. 혐오표현이라는 용어만 부각된다면 혐오감을 담은 표현 즉 감정적 표현이나 욕설을 포함한 극단적 표현이라고 이해하는 데 그치게 되고, 혐오표현 대응의 필요성이 드러나지 않을 우려가 있다.

혐오표현이 담고 있는 ‘혐오’는 사회적 편견과 낙인의 효과를 오롯이 받아내야 하는 표적집단과 그 개인들에 대한 시선에 담긴 감정을 의미한다. 즉, 개별화된 개인의 감정을 표출하는 표현들이 아니라 이 시대의 차별의식을 반영하는 표현들이다. 공고화된 불평등의 고리를 끊어 낼 것을 요청하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라면 이러한 표현들이 가지는 해악성을 공유할 수 있다. 인종주의, 가부장주의 등 일부의 사회구성원을 배제하거나 권리의 복권에 반대하는 사상이 표현의 형태로 가시화된 것 그리고 그러한 사상이 스스로의 정당성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 혐오표현의 민낯이다.

혐오표현은 표적집단에 대한 왜곡된 정보나 기존의 사회적 편견을 더 부추기는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곤 한다. 따라서 표적집단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기존의 사회적 편견을 줄여나가기 위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과 국가 모두의 노력이 요구된다. 다른 시민들에 대한 관심과 관용, 즉 표적집단에 대한 ‘혐오’가 사회적 편견에서 온다는 것을 인식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표적집단 구성원 개개인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차별 경험을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 중요하다. 표적집단에 가해지는 부정적인 편견과 차별의식에 대항하는 표현을 더 많이 증대시키는 것이 혐오표현에 대한 가장 필요하고도 선재돼야 하는 대응책이라고 할 수 있다. 캐서린 겔버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표적집단과 그 지지자들이 되받아 치기(Speaking Back)를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들에게 침묵, 소외, 역량 저하를 야기하고 있는 혐오표현’에 대한 정책적 대응책은 ‘표적집단과 그 지지자들이 혐오표현이 담긴 메시지와 효과에 대항할 수 있도록 지지의 응답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한 정책적 대응의 방법은 비단 법적 규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캠페인, 사회영역 내의 자율적인 가이드라인 시행을 통해서 이뤄질 수 있으며, 이는 설사 법적 규제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그 이전의 필수적인 선결 조건이다. 교육과 캠페인의 내용은 형식적이고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표적집단인 소수자의 정체성과 삶에 대한 이해 및 사회에서 접하는 일상의 차별에 대한 경험이 포함돼야만 더욱 효과적이다.

나아가 대항언론이 성립하기 위한 정책적 지지의 한 가지로써 표적집단에 대한 역량강화를 위한 지원을 들 수 있다. 표적집단 구성원 개개인이 일상에서 대항언론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에 따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나, 표적집단 구성원들이 공포감과 불안감 없이 자유롭게 경험을 공유하고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증대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정책적 해결이 도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표적집단이 시민사회에서 모일 수 있는 물리적 공간, 관련 단체에 대한 물질적·금전적 지원을 통한 추상적 공간의 확보가 정책지원으로써 유효할 것이다.

이승현 님은 연세대학교에서 헌법을 강의하고 인권을 주제로 연구활동을 하는 헌법학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