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신상공개 연좌제 - beomjoeja sinsang-gong-gae yeonjwaje

  오늘의 영화 <영도(Shadow Island, 2014)>
  영화 ‘영도’는 범죄자 신상공개로 인한 범죄자 가족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범죄자 가족이라는 낙인효과로 인해 ‘사실상 연좌제’로 불행한 삶을 겪고있는 주변인에 관해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다. 범죄 피해자뿐만 아니라 범죄자 신상공개로 인해 고통 받는 그의 가족과 지인들의 삶을 그린 영화 ‘영도’를 통해 범죄자 신상공개제도의 찬반 논쟁 및 이와 관련된 문제점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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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자 신상공개제도의 취지
  범죄자 신상공개는 1990년대 후반 한국에서 유행처럼 퍼진 ‘원조교제’를 차단하기 위해 2000년 7월 1일에 시행된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최초로 도입됐다. 이러한 신상공개제도는 초기에 심리적 강제 및 범죄 예방이라는 취지가 주된 목적이었지만 현재에는 미국 및 영국 등의 신상공개제도의 취지와 마찬가지로 지역사회의 범죄자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및 피해자 보호도 주된 목적에 포함됐다.  범죄자 신상공개제도의 Pros and Cons
  범죄자 신상공개제도에 관해서는 아직도 찬반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신상공개제도 찬성론의 논거는 범죄 예방의 용이성, 사회 공동체 보호라는 공익상 이유, 범죄 피해자와 같은 약자의 보호 등을 주장한다. 반면 반대론은 이중처벌 문제, 인권침해, 법의 형평성 위배, 그리고 연좌제 금지의 사실상 위배 가능성을 논거로 삼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신상공개제도의 입법목적은 해당 범죄인의 신상과 범죄행위를 일반에게 공개함으로써 어린이나 청소년 대상 성범죄 행위에 대해 일반 국민에게 경각심을 줘 유사한 범죄를 예방하고 이를 통해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헌법재판소는 위 결정에서 합헌의견은 4명, 위헌의견은 5명으로 위헌정족수에 도달하지 못해 합헌결정(위헌정족수는 6명 이상임)을 했는데 위헌이 다수의견이라는 점에서 범죄자 신상공개제도가 위헌적 요소를 다소 내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범죄자 신상공개제도는 범죄자 본인을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위험으로부터 사회 공동체를 보호하려는 인식을 제고함과 동시에 일반인들이 범죄의 충동으로부터 자신을 제어하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보안처분이다. 따라서 이미 공개된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된 형사판결이라는 공적 기록의 내용 중 일부를 국가가 공익 목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므로 범죄인들의 신상과 전과를 일반인이 알게 된다고 해 그들의 인격권 내지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그러나 범죄자 신상공개제도는 범죄 예방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위헌적 요소 및 실효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고 오히려 형벌적 성격을 가지므로 현대판 ‘주홍글씨’라는 낙인에 해당된다. 범죄자의 인격권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까지 실질적으로 명예형을 부과한다는 의미를 가지므로 사실상 연좌제 금지의 위배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범죄자 신상공개가 정당성을 갖는지 여부와 우리나라 형사법과 형사정책 측면에서 범죄 예방 내지 범죄자 교화 개선에 유용한 수단인지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몇 가지 검토사항이 요구된다. 첫째, 인격권 침해에 관해서는 신상공개제도가 소위 현대판 주홍글씨에 비견할 정도의 수치형과 흡사하며 대중에 대한 전시에 이용함으로써 단순히 범죄 퇴치 수단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은 범죄인의 인격권에 중대한 훼손을 초래한다. 둘째, 한국과 같이 명예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책임 없는 가족들에게 사실상 연좌제와 같은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정당성이 의심된다. 셋째, 신상공개를 한다고 해도 범죄 예방 효과가 미미하고 궁극적인 효과가 될 수 없다는 견해이다. 넷째, 사실상 이중처벌 논란이 제기되는 신상공개보다는 실질적인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신상공개가 정당하다는 찬성의견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성범죄자의 인권보다는 공익차원에서 단죄 의식을 뿌리내리기 위해 범죄자 신상공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잠재적 범죄인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범죄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논거이다. 둘째,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것인데 공적인물이론을 근거로 하고 있다. 즉, 공적인물이론에 따르면 프라이버시권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는 공개할 수 있으며 공개되는 자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한계가 결정되므로 공익적 우월성이 인정된다면 그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결론적으로 범죄자 신상공개제도는 필요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조건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고 이에 대한 실효성을 검토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남용한다면 범죄의 예방과 재범방지라는 본래의 취지를 상실할 것이다. 또한 이 제도는 헌법적 관점에서도 위헌적 소지가 내포되어 있으므로 법제도적 보완이 요구된다.

  낙인효과(stigma effect)로 인한 ‘사실상 연좌제’
  범죄자 신상공개제도로 인한 낙인효과는 책임없는 가족의 정서에 극심한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유발시켜 이들을 자살 혹은 제2의 범죄자로 발전시킨다. 2013년 11월 29일 초등학생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러 신상이 공개된 자의 아들이 아버지의 성범죄 이력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성범죄자 신상공개 명령에 따라 자신의 아버지의 성범죄 이력이 지역사회에 통지됨으로써 학교나 주변에서 소문이 날까봐 불안에 떠는 범죄자 가족들의 삶이 범죄자 신상공개로 인해 사실상 연좌제로 고통받고 있다.

  영화 ‘영도’에 나오는 판사의 대사 중 “할머니와 영도 잘 들으세요. 두 사람은 아들과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연쇄살인범) 때문에 평생 세상 사람들에서 용서를 구하고 봉사하시면서 사셔야 될 사람들입니다”는 연좌제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연좌제란 범죄자와 일정한 친족 관계가 있는 자에게 연대적으로 그 범죄의 형사 책임을 지우는 제도로 형벌, 신분상의 불이익뿐만 아니라 기타 불이익한 처분도 해당된다. TV나 영화의 사극에서 죄인을 처벌할 때 “삼족(三族)을 멸(滅)하라!”라는 대사는 범죄자 본인만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 없는 가족 및 친족들에게까지 죄를 묻는다는 점에서 연좌제의 대표적인 표현이다. 악법이라고 할 수 있는 연좌제는 근대화가 진행되던 중 과거의 불합리한 형벌과 법률이 폐지되고 근대적 형사사법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1894년 갑오개혁으로 인해 폐지됐다. 대한민국헌법 제13조 3항에서도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 한다”는 규정을 신설해 친족의 행위로 인해 국가로부터 어떠한 불이익한 처분도 받지 않는다는 자기책임의 원칙을 선언했다. 연좌제와 관련된 내용이 우리나라의 최상위법인 헌법에 보장돼 있는 것은 책임주의 원칙에 따라 우리 국민들이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임을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신상공개가 돼 범죄자의 주소지가 드러나게 되면 범죄자 거주지가 사실상 ‘혐오시설’로 인식돼 ‘내 집 앞은 안 된다’는 ‘님비(NIMBY) 현상’의 발생을 초래한다. 또한 공개대상 범죄자나 그의 가족들은 위협이나 괴롭힘, 물리적 폭행으로 인해 신체적 부상 및 재산상의 손실 등의 해를 입기도 한다. 이처럼 신상공개 대상이 된 범죄자는 물론 그들의 가족까지 범죄자와 관련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이나 언어적 폭력은 물론 물리적 폭력 그리고 이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주거의 어려움, 심리적 스트레스 등을 경험하는 것은 범죄자 신상공개 본래 제도의 취지와는 상관없이 범죄자 가족에게까지 피해가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등 부정적 결과를 야기한다. 신상공개는 범죄예방 수단으로 몇 가지 재고돼야 할 사항이 요구되며 이들에게 낙인을 부여함으로써 오히려 소외감을 느낀다면 또 다른 범죄가 발생될 우려가 크다. 그러므로 범죄자 신상공개 여부는 재범위험성을 고려해 위험평가도구의 활용을 통한 차별화 정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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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신상공개 연좌제 - beomjoeja sinsang-gong-gae yeonjwaje
ⓒ평화와 가치를 열어가는 부천연대4월20일 부천북부역 마루광장에서 시민 40여 명이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 및 처벌을 요구하는 침묵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장자(莊子)〉에는 ‘厲之人 夜半生其子 遽取火而視之 汲汲然 惟恐其似己也’(여지인 야반생기자 거취화이시지 급급연 유공기사기야)라는 구절이 있다. 불구자가 밤중에 자식을 낳고서 급히 불을 들어 비춰보았는데, 그가 서두른 까닭은 자식이 혹여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서였다는 내용이다. 신영복 선생은 이 구절을 “비통하리만큼 엄정한 자기 응시, 이것은 그대로 하나의 큼직한 양심”이라고 해석했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의 가해자들(정확히는 피의자들)의 신상이 공개되고 있다. 가장 먼저 검거된 피의자 조 아무개씨의 실명과 얼굴 사진 그리고 나이가 공개되었다. 얼굴을 드러낸 조씨가 이송되면서 인터뷰를 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이후 검거된 대화방 운영자들인 피의자 강 아무개씨, 이 아무개씨, 그리고 문 아무개씨의 신상도 차례차례 공개되었다. 아직 검거되지 않은 운영자들은 물론이고 대화방에 가입한 사람 전원에 대한 신상공개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피의자’ 신상공개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09년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 검거를 계기로 2010년 4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정강력범죄법’)에 제8조의 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가 신설됐다. 같은 시기 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에서도 당시 제23조(현행 제25조)를 두어 피의자의 얼굴 등을 공개하도록 하였다.

그 이전에도 ‘신상공개’ 제도는 있었다. 이전의 신상공개는 성폭력처벌법 제42조 이하 및 청소년성보호법 제49조 이하 규정과 같이 법원 확정판결에 따른 보안처분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서 재범 방지를 위한 목적이 있었다. 즉, 확정판결 받는 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형사제재로서 기능했다. 반면 특정강력범죄법 제8조의 2, 성폭력처벌법 제25조에서 규정한 신상공개(같은 취지로 ‘범죄수사규칙’ 제178조)는 확정판결을 받기 전 수사 단계의 피의자를 대상으로 한다.

보안처분의 성격을 띤 이전의 신상공개는 가족 등에 대해 연좌제와 같은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비록 형벌과 보안처분은 형식적으로는 다른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이중처벌과 같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곤 했다. 다만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자에 대한 형사제재의 하나라는 점에서, 더 나아가 재범 방지라는 뚜렷한 명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수사 중인 피의자에 대한 신상공개는 전자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상 노출에 따라 방어권이 위축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된다는 점, 그리고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는 근본 문제를 야기한다. 그뿐인가. 피의자 신상공개는 형법을 통해서 일반적으로는 명예훼손이 될 수 있고(제307조 제1항), 특히 피의사실 공표라는 범죄가 되기도 한다(제126조).

물론 피의자 신상공개는 일정한 요건과 절차가 정해져 있다. 공개의 주체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이어야 한다.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필요할 때’(성폭력처벌법) 혹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사건이며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특정강력범죄법)을 요건으로 한다. 2015년부터 경찰서나 지방경찰청별로 ‘신상공개위원회’가 신설되어 이곳에서 공개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신상공개 시점은 피의사실에 대한 법원의 1차 판단이 완료됐다고 볼 수 있는 구속영장 발부 시점 이후를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대개 ‘강력범 얼굴 및 신상공개 지침’에 따라,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이미 실명이 공개된 피의자의 경우는 충분한 증거가 확보됐을 시 구속영장 발부 전에 신상공개위원회 결정을 거쳐 공개할 수 있다. 만약 수배 대상자라면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에 의해 얼굴 사진과 성명, 나이는 물론 직업, 신체의 특징 등 신상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까지 공개할 수 있지만, 이미 신병이 확보된 피의자의 경우는 얼굴, 성명 및 나이 등으로 범위가 축소된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는 자신의 주장을 여과 없이 발언하기도 한다.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거나 스스로를 영웅시할 수도 있고, 피해자를 모욕하거나 비난하기도 한다. 더러는 양형의 참작을 받기 위해 전략적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일단 신상이 공개되면 사실상 돌이킬 수 없다. 피의자 신상공개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함으로써 제도의 정당성과 지지를 확보한다. 하지만 이미 신병이 확보된 피의자에 대해서는 특별 예방(범인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재사회화)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일반 예방(범죄자를 처벌함으로써 다른 일반인들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함)의 효과 또한 검증된 바 없다. 그렇다면 국민의 알권리는 무엇일까. 응보 성격의 망신주기와 호기심, 그에 편승한 언론의 상업주의에 그 실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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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자료2009년 2월2일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현장검증 모습.

공개된 피의자 신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공공의 이익’을 좀 더 적극적으로 재구성하고 이해할 필요는 있다. 이번 텔레그램 n번방 사건처럼 디지털을 활용한 범죄는 피의자가 신상공개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갖기 때문에 의외로 예방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지금 신상공개에 보내는 국민의 지지는 디지털 성범죄의 낮은 처벌에 대한 반발, 즉 검사의 구형과 법원의 판결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신상공개가 오히려 성범죄자에 대한 효과적이고 정당한 처벌로 국민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점에서 신상공개 제도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 많은 문제를 무릅쓰고 신상공개를 운용할 필요성과 정당성 그리고 운용의 합리성을 도모해야 한다. 우선 ‘공공의 이익’의 내용에 대한 합리적 해석 및 공공의 이익과 침해 법익 사이의 실제적 조화가 필요하다. 어찌 보면 원칙적이고 뻔한 얘기 같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공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얻어지는 이익과 침해되는 법익 사이를 면밀하게 따지는 작업, 즉 ‘형량’을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형량 작업을 통해 신상공개 판단의 자의성과 비일관성을 줄여야 한다. 더 나아가 신상을 공개할 만큼 사회적으로 비난 가능성이 높은 범죄와 행위가 무엇인지 알려줌으로써 법치국가적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신상공개가 자칫 피의자의 마이크로 전락하거나 가해자 서사(敍事)의 계기가 되어서도 안 된다. 특히 가해자의 불필요한 신상 노출은 ‘가해자도 알고 보면 지극히 평범하거나 순수한 사람이었다’는 식으로 동정 여론을 형성하거나, ‘오히려 비난받을 사람은 피해자였다’는 식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공개된 피의자의 신상을 통해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아니,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저 사람이 나와 무관한 인격’이라는 점을 애써 확인하고 그를 타자화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내 안에 잠재할 수도 있는 또 다른 인격의 가능성을 응시함으로써 그를 자기화하려는 것일까. “비통하리만큼 엄정한 자기 응시”야말로 신상공개 제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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